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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019.3.16.(정기) / 대구 팔공산 / 산타나 산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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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6차 대구 팔공산

봄에서 겨울로의 산행

 

< 팔공산(山) >

대구의 진산으로, 높이는 1,192.3m이다. 남쪽으로 내달리던 낙동정맥에서 팔공지맥으로 분기하여 솟아 행정구역상으로는 대구광역시 동구에 속하지만, 대구광역시 군위군과 함께 경상북도 영천시·경산시·칠곡군 등 4개 시·군이 맞닿는 경계를 이룬다. 주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서로 20㎞에 걸쳐 능선이 이어진다. 예로부터 부악()·중악()·공산()·동수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며 남쪽에 문암천(), 북쪽과 동쪽에 한천()·남천()·신녕천() 등 여러 하천과 계곡이 발달하였다.

팔공산을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영험()의 상징으로 불리는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갓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골짜기에 있으며 머리에 갓을 쓰고 있는 형상의 좌불상이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소망을 기원한다.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해발 850m에 위치하며 높이는 약 6m이며 머리의 갓의 지름은 1.8m이다. 신라 선덕왕 때 의현대사()가 어머니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전해진다. 머리에 쓴 갓의 모양이 대학학사모와 비슷하여 입시철 합격을 기원하는 행렬이 해마다 북새통을 이룬다.

팔공산 기슭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를 비롯해 파계사()·부인사()·은해사() 등의 명찰이 많이 있다. 통일신라의 원효대사가 삼국의 통일과정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는 군위삼존석굴(:국보)이 있는데 이는 경주 토함산 석굴암보다 제작연대가 빠르다. 동화사 집단시설지구에서 820m 높이까지 케이블카가 다니고 80m 높이의 병풍바위에서는 암벽등반이 가능하다. 팔공산은 1980년 5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23년 5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팔공산은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통일구상을 하면서 수행했던 곳이며, 고려를 세운 왕건이 견훤과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원래 산의 명칭은 공산이라고 불렀는데 신숭겸을 포함한 고려의 개국공신 8명을 기리기 위해 팔공산()이라고 불렀다.

[출처] 팔공산 [八公山]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팔공산 비로봉 정상

 

동화사(펌) 한때 대웅전 뒤에 금괴가 묻혀 있다고해서 화재가 됐었지요

<동화사(寺)>

동화사는 493년(신라 소지왕 15) 극달(極達)이 세운 유가사(瑜伽寺)인데, 832년(흥덕왕 7)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중건하면서 동화사라고 개칭한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중건하였다. 동화사 경내(境內)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도 몇 차례 중건하였는데, 현재의 건물은 조선시대인 1732년(영조 8)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은 8단의 반원형 돌계단이 있는 5단의 높직한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지어진 다포식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가공하지 않은 아름드리 자연목을 그대로 사용한 기둥이 멋스럽다. 공포의 짜임은 외삼출목, 내오출목이며 바깥의 제공 쇠서 끝이 날카로운 곡선을 나타낸다. 내부의 살미첨차는 판형(板形)으로 되어 있는데, 그 끝에는 뾰족한 연꽃봉오리를 조각하였다. 전면 문짝의 화려한 꽃살무늬 장식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내부 불단에는 석가모니를 주불로 왼쪽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약사여래불의 삼세불을 봉안하고, 그 위에 극락세계의 장엄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닫집이 설치되어 있다. 불상을 봉안한 벽면에는 영산회상도가 걸려 있고 동쪽 벽면에는 신중탱과 지장탱, 서쪽 벽면에는 삼장탱의 탱화가 있다. 천장에는 세 마리의 용과 여섯 마리의 봉황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팔공산의 산세와 조화를 이루는 대웅전은 작지만 위엄있는 건물이다.

[출처]  대구 동화사 [大邱 桐華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동화사 주차장에서 출발전

 

비로봉 군부대...

 

염불암

 

마치 쑥갓 무침 튀김같은 느낌

 

북쪽사면엔 간밤의 잔설이 남아 있어요 뜻밖의 겨울산행

 

상고대가 이렇게...올겨울 상고대를 대구에서 봅니다

 

동봉에서

팔공산의 옛 이름은 공산 · 부악()이었고, 『신증동국여지승람(輿)』에는 “중악()에 비겨 중사()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후삼국시대 견훤()이 서라벌을 공략할 때에 고려 태조가 5,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후백제군을 정벌하러 나섰다가 공산() 동수()에서 견훤을 만나 포위를 당하였다. 그 때 신숭겸()이 태조로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함으로써 태조가 겨우 목숨을 구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신숭겸과 김락() 등 8명의 장수가 모두 전사하여 팔공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팔공산 유래에 대해서는 중국 안휘성()의 팔공산 지명 차용설 등 몇 가지 설이 있다.

[출처] 팔공산 [八公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갑자기 겨울모드

 

팔공산에서 상고대를 보다니...

 

팔공산 석조약사여래입상

대구 팔공산 중앙봉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전체 높이 6m에 달하는 거대한 석불입상이다.
얼굴은 두 볼이 풍만하고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띠고 있어서 자비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신체에 비해 큰 오른팔은 안쪽으로 늘어뜨렸는데 다섯손가락의 길이가 고르지 않아 부자연스러우며, 왼팔은 가슴 앞으로 올려 무언가를 잡고 있는 듯하나 확실하지 않다. 옷자락 밖으로 노출된 발끝은 발가락의 조각이 뚜렷하여 거대한 불상임에도 안정감을 준다.
거대한 불상에 잘 조화되어 있는 옷주름이나 인상 등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관봉(冠峰)의 석조여래좌상과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문화재청

 

산정부의 통신타워

 

비로봉 정상

 

제천단

 

조금 늦은 중식시간...

 

마애여래좌상

 

바위틈에서 힘겹게 자랐을 소나무

 

대형 슬랩구간. 암벽타기 연습이 한창입니다

 

수태골 하산길

 

수태골폭포(펌)

팔공산[1,193m] 남사면의 용수천 상류에 해당하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수태골 일대에 형성된 폭포로 낙차는 약 10m 규모이다.

수태골 폭포는 수태골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수태골()의 수태()는 물이 유난히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다.

수태골 폭포는 경상누층군 불국사층군 화강암의 급애를 두부 침식하며 흐르고 있다. 폭포의 아래에는 폭호()가 형성되어있다. 폭포의 유로는 수태골 일대에서 발원하는 용수천으로 이어지며, 용수천은 대구광역시 동구 미곡동 일대에서 동화천으로 합류한다.

수태골 폭포가 위치한 수태골은 여름철 대구 시민들의 대표적인 피서지로 이용되고 있다.

[출처] 수태골폭포 [水台滑 瀑布]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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