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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22.(번개) / 함평 모악산 / 산타나 산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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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4차 함평 모악산(9.22)

꽃무릇산행 음지쪽엔 꽃이 지고 있네요
오늘의 야생화 꽃무릇 며느리밥풀

 

< 모악산() >

함평군의 해보면 영광군 불갑면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고도:339m). 불갑산 다음으로 높은 산봉우리이며, 불갑산 남서부 줄기와 바로 이어진다. 산 아래에 용천사(龍泉寺)라는 절이 있다. 함평천의 지류인 내동천과 불갑천의 발원지이다. 용천사 계곡에는 희귀식물인 꽃무릇[相思花]이 수백만 주 자생하고 있다. 『대동지지』(함평)에 "북쪽으로 30리에 있으며 영광과 경계를 이룬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영광)에 모악산은 "함평군의 남쪽 20리에 있는데 함평현에서도 보인다. 산중에 용굴이 있는 깊이는 헤아릴 수 없고, 가뭄에 비를 빌면 효험이 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함평군지』에 "모악산은 해보면에 있고, 불갑산에서 직락(直落)하여 구름 사이에 솟아 있으며, 신라 진평왕 때 용천사가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광여도』와 『지승』에는 지명이 표기되지 않으나, 『1872년지방지도』(함평)에 모악산이 무악산(毋岳山)으로 표기되어 대야면의 북편에 자리잡고 있다고 수록되어 있다. 『조선지형도』와 현대지형도에도 지명 표기가 없지만 『군세일반』(함평)의 지도에 불갑산과 무악산이 기재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함평군)과 『1872년지방지도』(함평)에는 무악산(毋岳山)으로 표기되어 있어 모(母)와 무(毋)가 혼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모악산 [母岳山] (한국지명유래집 전라 · 제주편 지명, 2010. 12.)

 

모악산 정상

 

 모악산 개념도

 

축제는 끝났지만 불갑사입구 보리밥집엔 대기표를 받아야 하네요

 

불갑사 일주문 축제는 현재 진행형

<불갑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의 말사이다. 창건시기가 분명하지 않아 384년(침류왕 원년)에 마라난타가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백제 문주왕 때 행은이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에 중창하였고, 고려 후기에 각진국사가 머무르면서 크게 중창하였는데 당시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렀으며 사전()이 10리 밖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정유재란을 겪은 이후 법릉이 중창하였고 1634년에는 해릉이 중창하였는데, 여러 차례 중창을 거치면서 절의 규모가 점차 줄어들었다. 1802년(순조 2)에는 득성이 대대적으로 중창을 하였다. 또 869년(고종 6)에는 설두가, 1876년(고종 13)에는 설파가, 1879년(고종 16)에는 동성이 각각 중창하였다. 1938년에 설제가 중수하였고, 1984년에도 중수가 이어졌으며 1996년에 기와를 새로 입히는 등 보수를 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대웅전(보물 830)을 비롯하여 칠성각, 일광당, 만세루, 범종루, 향로전, 천왕문(전남유형문화재 159) 등이 있다. 또한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일괄(전남유형문화재 제340호), 목조 석가여래삼존좌상과 나한상 일괄(전남유형문화재 제341호)도 있다. 이외에 각진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이 700년 정도 된 참식나무(천연기념물 112)가 있다. 

[출처] 불갑사 [佛甲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고목나무엔 소원들이 매달린듯

 

양지녘엔 꽃무릇이 절정입니다

 

불갑사앞 꽃무릇 단지

 

소원들이 매달린 소원터널

 

모악산 정상(정상 표지가 잘못되어 있어요)

 

용천사쪽 야생멧돼지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동족상잔의 비극이...

 

삽주(창출)

<삽주>

산지의 건조한 곳에서 자란다. 뿌리줄기는 굵고 길며 마디가 있고 향기가 있다. 줄기는 곧게 서고 윗부분에서 가지가 몇 개 갈라지며 높이가 30∼100cm이다. 뿌리에서 나온 잎은 꽃이 필 때 말라 없어진다.

줄기에 달린 잎은 어긋나고, 줄기 밑 부분에 달린 잎은 깊게 깃꼴로 갈라지며, 갈라진 조각은 3∼5개이고 타원 모양 또는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의 긴 타원형이며 표면에 윤기가 있고 뒷면에 흰빛이 돌며 가장자리에 가시 같은 톱니가 있고 잎자루의 길이가 3∼8cm이다. 줄기 윗부분에 달린 잎은 갈라지지 않고 잎자루가 거의 없다.    

꽃은 암수딴그루이고 7∼10월에 흰색으로 피며 줄기와 가지 끝에 두상화(:꽃대 끝에 꽃자루가 없는 작은 꽃이 많이 모여 피어 머리 모양을 이룬 꽃)가 1개씩 달린다. 는 꽃과 길이가 같고 2줄로 달리며 깃꼴로 갈라진다. 두상화는 길이가 15∼20mm이고 20∼30개의 관상화가 있다.

총포는 길이 17mm의 종 모양이고, 총포 조각은 7∼8줄로 배열하며 바깥쪽 조각은 타원 모양이고 가운데 조각은 긴 타원 모양이며 안쪽 조각은 줄 모양이다. 관상화의 화관은 끝이 5개로 갈라진다. 열매는 수과이고 털이 있으며 길이 8∼9mm의 갈색 관모가 있다.

한방에서는 뿌리줄기를 창출()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발한·이뇨·진통·건위 등에 효능이 있어 식욕부진·소화불량·위장염·감기 등에 사용한다. 어린순을 나물로 먹는다. 한국 ·중국 동북부·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비슷한 종류로 잎자루가 없는 것을 용원삽주(A. koreana)라고 한다.

[출처] 삽주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단정한 용천사의 모습

<용천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600년(백제 무왕 1)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645년(의자왕 5) 각진(覺眞)이 중수하고, 1275년(고려 충렬왕 1) 국사 각적(覺積)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세조 명종 때 중수하여 큰 절로 성장하였다. 《용천사대웅전현판단청기》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1597년(조선 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00년(선조 33) 중창하였고, 1632년(인조 10)에는 법당을 새로 지었다. 1638년(인조 16)과 1705년(숙종 31)에 중건하고, 1938년에 중수했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1964년에 금당이 옛 보광전(普光殿) 자리에 대웅전을 새로 세우고, 요사채도 지어 절의 면모를 바꾸었다. 1996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범종각·웅진당·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용천사석등 해시계 등이 전한다. 이 중 1981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된 석등은 높이 2.38m로 1685년(숙종 11)에 제작된 것이다. 짜임새가 투박하지만 하대석에 거북이 조각되어 있다. 해시계는 석등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6·25전쟁 때 잃어버렸다가 1980년 경내 흙더미 속에서 발굴된 것이다. 본래는 높이 14cm, 가로 세로 각 39cm의 정사각형이었으나 지금은 절반이 떨어져나간 상태이다. 하지만 낮시간에 해당되는 묘시(卯時)부터 유시(酉時)까지는 남아 있어 사용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밖에 대웅전에는 18세기 때 조성된 후불탱화가 있었으나 2000년 5월에 도난당하였다.

[출처] 용천사 [龍泉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용이 승천했다는 용샘입니다

 

용천사 부도탑의 모습

 

3년전 용천사 부도탑

 

제방쪽엔 아직 한창

 

용이 승천 직전인듯 합니다

 

3년전 용천사 꽃무릇 군락지(올해는 1주일 정도 늦은듯)

 

석산(꽃무릇)

<석산(꽃무릇)>

꽃무릇이라고도 한다. 원산지는 중국으로, 절에서 흔히 심고 산기슭이나 풀밭에서 무리지어 자란다. 비늘줄기는 넓은 타원 모양이고 지름이 2.5∼3.5 cm이며 겉껍질이 검은 색이다. 꽃은 9∼10월에 붉은 색으로 피고 잎이 없는 비늘줄기에서 나온 길이 30∼50 cm의 꽃줄기 끝에 산형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총포는 길이 2∼3 cm의 줄 모양 또는 피침 모양이고 막질(:얇은 종이처럼 반투명한 것)이며, 작은꽃자루는 길이가 6∼15 mm이다. 화피 조각은 6개이고 거꾸로 세운 바소 모양이며 뒤로 말리고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주름이 있다. 수술은 6개이며 꽃 밖으로 길게 나온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이 떨어진 다음 짙은 녹색의 잎이 나오는데, 이 잎은 길이가 30∼40 cm이고 다음해 봄에 시든다. 한방에서는 비늘줄기를 약재로 쓰는데, 인후 또는 편도선이 붓거나 림프절염·종기·악창에 효과가 있고, 복막염과 흉막염에 구토제로 사용하며 치루와 자궁 탈수에 물을 넣고 달여서 환부를 닦는다. 또한 비늘줄기는 여러 종류의 알칼로이드 성분을 함유하여 독성이 있지만 이것을 제거하면 좋은 녹말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사찰에서 많이 길렀다고 하며, 석산으로부터 얻은 녹말로 풀을 쑤어 탱화를 그리는 데 활용했다고 전한다.

한방에서 약재로 활용한다고 하나, 독성이 있어 모르고 섭취하였을 경우 오심과 설사가 발생하며 심하면 중주신경의 마비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죽음과 관련된 많은 이명()이 존재하는데, 지역에 따라 사인화(), 장례화(), 유령화(), 지옥화() 등으로도 불린다. 일본에서는 주로 피안화()라고 불린다.

[출처] 석산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불갑사 입구의 호랑이(우리나라 마지막 호랑이였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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